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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by 파동 미스피치 2025. 2. 4.

    [ 목차 ]

▣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1508년 바티칸 사도 궁전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위촉받고 허리가 꺾이는 듯한 고통에도 4년 만에 완성하였다. 이효성 작가가 쓴 계몽사 그림위인전기《미켈란젤로》에 따르면, 당시 미켈란젤로는 비둘기의 허리처럼 허리가 굽혀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1520년 피렌체의 메디치가 예배당에 안치할 조각상을 10년에 걸쳐 조각하는 한편, 산 로렌초 성당 부속 도서관 입구를 건축하였다. 이효성 작가가 쓴 계몽사 그림위인전기《미켈란젤로》에 따르면, 피렌체 공화국을 사랑한 미켈란젤로는 1529년 독일 카를 5세 군의 피렌체 포위 때 방위후에 메디치 가의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와 사이가 나빠져, 1534년 카를 5세가 침략할 때에 방위 의원으로서 성을 쌓아서 고향을 지키고자 할 정도로 사랑하는 고향인 피렌체를 영원히 떠나 로마에 정착했다. 피렌체를 떠날 때 그는 같이 일한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팔아서 임금으로 대신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로마로 거주지를 옮긴 미켈란젤로는 새로운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시스티나 경당의 정면 대벽화를 위촉받고, 노령으로 발판 위에서 떨어져 가면서까지 혼자 꾸준히 그려 6년에 걸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였다.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의 실력을 존중하여, 어느 추기경이 미켈란젤로를 무지하다고 업신여기자, "무식한 사람은 추기경님입니다. 추기경님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며 편들어 주었다 한다.(이효성(1996))

 

1550년 바티칸 파올리나 예배당의 프레스코 벽화 <바오로의 회심>(1549년)과 <십자가의 베드로>(1550년,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는 순교 그림)를 완성했다. 1542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로마 가톨릭의 출발점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그려 줄 것을 부탁했고, 미켈란젤로는 기독교 공동체의 선교사로서 경건하게 살아간 두 성인의 그림을 그리면서 로마 가톨릭의 지도자인 교종들을 비판하는 뜻을 담아냈다.

 

1550년대 이후 미켈란젤로는 죽음을 의식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린 열두 점의 드로잉을 남긴다. 이는 그의 만년 스타일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켈란젤로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팔레스티나의 피에타, 론다니니 등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1564년 89세를 일기로 긴 생애를 로마에서 마쳤다.